Korean-American author Angela Mi-young Hur explores identity through folklore
"이민자로서 고된 삶을 살아온 어머니는 제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에밀레종, 심청, 허황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탐구해온 앤절라 미영 허(46)는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옛이야기와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우리, 메아리처럼'(열린책들 펴냄)의 저자인 앤젤라 미영 허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 "옛이야기서 나만의 의미 찾아…아름다움과 연민·용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에게 들려준 옛이야기는 영어권 동화의 밝고 유쾌한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야기 속 여자 주인공은 하나같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에밀레종 설화에서 여자아이는 끓는 청동 속에 시주로 바쳐지고, 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바다로 뛰어든다.
작가는 "주로 용감하고 헌신적인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가 제게 심어주려 했던 자부심을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비극적 결말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문화적·사회적 기대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고 말했다.
'우리, 메아리처럼'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남극의 과학 기지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엘사는 '유령 입자'라 불리는 중성미자를 연구하는 입자 물리학자.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설화 속 여성들의 비극과 집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학이라는 합리와 이성의 세계로 도피한다.
하지만 남극 기지까지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엘사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 옛이야기 속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2021년 발표된 이 책의 원제는 '포클론'(Folklorn)이다.
영어의 'folk'는 민족이나 가족, 'folkor'는 민속을 뜻하며, 'forlorn'은 쓸쓸하고 버려진 상태를 의미한다. '포클론'은 작가가 만든 단어로 가족의 고독, 문화적 증후군, 가족에게 갇힘을 의미한다.
작가는 작품 속 여러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러 옛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불러낸다.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며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되는 비극에서 벗어나려는 한 여성의 모험담으로도 읽힌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이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주기를 바랄 때 비로소 주체성이 생깁니다. 사과와 용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이야기로 재해석하려 했어요."
작가는 "한국의 옛이야기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과 연민, 용서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여성들을 단순한 희생자나 조연이 아니라 여행자이자 탐험가, 이주민이자 진실을 전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심청과 아버지가 새로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이는 작품 속 한국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입양된 오스카르와 양어머니의 관계와도 포개진다.
◇ "옛이야기는 정체성…민담과 신화는 문화·가치관 비추는 거울"
작가의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이었고,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정체성이었다.
작가는 "한국 설화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입구가 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을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도달한 이야기의 힘과 상상력에 경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또 '우리, 메아리처럼'에서 과학과 신화를 대립하는 영역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접근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는 "과학과 신화는 모두 우리를 둘러싼 광대하고 신비롭고 강력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서 출발한다"며 "그 밑바탕에는 호기심이 있고,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으며, 그 이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담과 신화는 각 시대와 문화, 가치관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며 "엘사에게는 연민과 용서,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 탐구…차기작도 동화·신화 소재
앤절라 미영 허는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외국어대 영문학 강사로도 재직했으며,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2007년 장편소설 'K-타운의 여왕들'(The Queens of K-Town)을 발표하며 문학계에 첫발을 뗐다. 이 역시 이민자 소녀의 고뇌와 사랑 등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었다.
앤절라 미영 허는 "세 번째 장편소설 '룸 트리'(The Loom Tree)가 곧 미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라며 "미국 원주민의 이야기와 여러 대륙에 뿌리를 둔 동화들, 그리고 한국의 웅녀 신화를 비롯해 곰과 통치자, 변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탐구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