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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명예교수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1980~2000년대 한불 정상회담 통역을 전담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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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교수는 1980년대부터 프랑스와 한국의 정상회담 통역을 도맡아 양국 간 외교 및 문화 교류에 기여한 인물이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회의 동시통역이 가능한 통역사가 되었다.
1980∼2000년대 한불 정상회담 통역을 도맡아 한 최정화(崔楨禾)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명예교수가 14일 낮 12시 30분께 삼성서울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71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여고, 한국외대 불어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제3대학 통역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국내엔 통번역대학원이 없을 때였다. 1981년 통역대학원(석사)을 졸업한 덕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할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이전에는 외교관이 순차 통역을 했다.
1986년 전두환(1931∼2021년) 대통령의 프랑스 공식 방문 당시 프랑스 정부 측 공식 통역관으로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이래 1989년 프랑스, 1993년 한국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프랑스 측의 단골 통역사로 일했다. 자크 시라크(1932∼2019년) 대통령과 노무현(1946∼2009년) 대통령 회담까지 정상회담만 20여회, 국제회의는 2천여회에 걸쳐 통역을 맡았다. 2023년 'EBS 초대석'에 출연했을 때 미테랑 대통령이 "파리에 오면 연락해달라"고 해서 엘리제궁에서 독대한 적이 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1987년 한국에 귀국해서는 이듬해부터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통번역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2003년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을 만들고 한국이미지상을 시상하는 등 다양한 문화 교류 행사를 열어왔다.
2003년 한국 여성 최초로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Chevalier·기사)장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한 등급 높은 훈격의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Officier·장교)장을 수훈했다.
유족은 프랑스인 남편 디디에 벨투아즈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17일 오전 7시, 장지 제천 개나리추모공원. ☎ 02-3410-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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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통역 활동이 한불 관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문화 교류 행사에서 고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