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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i안동만 전 ADD 소장 "천궁II, 미국 패트리엇보다 낫다"
안동만 전 ADD 소장 "천궁II, 미국 패트리엇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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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3 sa önceDefense14 dk okumaSouth Korea

안동만 전 ADD 소장 "천궁II, 미국 패트리엇보다 낫다"

Hızlı Bakış

안동만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이 한국의 미사일 기술, 특히 천궁II가 미국 패트리엇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방과학기술 자립을 최대 목표로 삼았으나, 관료주의 문화가 연구 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Yapay zekâ öz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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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만 전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은 한국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 '백곰' 개발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의 미사일 기술 수준과 국방과학기술 자립의 중요성에 대해 인터뷰했다.

Yazı boyutu

※ 편집자 주= 안동만 전(前)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인터뷰는 분량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첫 번째로 안 전 소장의 성장 스토리와 한국의 미사일 능력 등을 다뤘습니다. 2∼4번째 기사는 최초의 국산 병기를 제조한 '번개 사업', 지대지 미사일을 처음으로 개발한 '백곰 사업', 그 이후 '현무' 미사일의 위력, 전투기와 전차의 개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사진 등이 많이 들어갑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발사 초읽기와 함께 백곰은 시뻘건 불기둥을 내뿜으며 솟아올랐다. 저 멀리 날아가 시야에서는 시험 통제원의 "비행시간 1분 경과", "2분 경과" 하는 멘트와 "삐삐삐" 하는 비행 진행을 알리는 초시계 소리는 1초 1초가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탄착"이라는 멘트가 떨어지자 관람대는 물론이고 모든 연구원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위의 내용은 1978년 9월 26일 최초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 '백곰'의 발사 당시 상황을 서술한 것으로, '백곰, 도전과 승리의 기록'이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책을 집필한 ADD 출신 3명 중 주저자인 안동만(77)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지난 6월 8일을 시작으로 세 차례 진행됐다. 인터뷰 장소는 대전시 한국무기체계안전협회 사무실이었다.

안 전 소장은 인터뷰에서 "적군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의 '천궁II'미사일은 세계 톱 수준"이라면서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미사일 패트리엇보다 천궁이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35년간 ADD에서 일하면서 나의 최대 목표는 국방과학기술 자립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면서 "한국의 국방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실패하는 것을 용인해줘야 하는데, 현재는 관료주의 문화 때문에 그게 잘 안되고 있다"고 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안 전 소장은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항공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노스럽대에서 항공공학 석사학위, 영국 크랜필드대에서 같은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ADD에 입사한 그는 1990년 항공기술 부장, 1995년 대함유도무기체계 부장, 2000년 항공기·유도무기개발본부장, 2003년 국방부 연구개발관을 지냈으며 2005년부터 3년간 ADD 소장으로 일했다.

그는 ADD에서 국산 항공기와 미사일 개발에 적극 나섰던 과학자로, 국방과학기술 자립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현재는 한국무기체계안전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1차 기사 질문-답변

-- 고향은 어디인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곳에서 3∼4살 정도까지 살다가 대구로 이사 왔다. 이후 대구에서 성장했다.

-- 일찍 대구로 이사 왔으니 안동에 대한 기억은 없을 듯하다.

▲ 그건 아니다. 안동 갈전리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으며, 근처의 풍산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에는 외가댁이 있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면 한 달씩 친가와 외가에 머물곤 했다. 요즘에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사용하지만, 당시는 조부님이 일일이 호미로 풀을 뽑으셨다. 그때 나도 그 일을 도와드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6.25 전쟁 직전에 경찰관이 되셨다. 이후 지역 마을금고에서 상무로 일하셨고, 동네 사람들의 신망이 자자했다. 집안에서는 엄격하신 분이었다.

--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나.

▲ 전업주부였지만 당시의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살림에 보태기 위해 여러 가지 부업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자상하시면서 부지런하셨다. 그리고 교육열이 무척 강하신 분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주변에 자랑하셨다. 어머니가 이러시니 나는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집안일을 돕는 것은 물론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학창 시절은 어떠했나.

▲ 나는 대구의 남산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녔다. 반에서 늘 1∼2등은 했다. 경북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세상에 부자들이 많다는 것, 빈부격차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실제로 내 짝꿍은 "우리 아버지는 000회사 사장인데, 네 아버지는 뭐하노?"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보결로 들어온 친구였다. 당시 경북중 입학 정원은 480명인데, 들어가 보니 62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당시는 돈을 내고 들어오는 기여입학 같은 것이 심했다. 그때는 서울의 명문고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 경북중 졸업 후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조선항공과에 들어갔는데, 그 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 1950년대 후반에 소련의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와 우주인 유리 가가린 이야기가 있었다. 1960년대 미국에는 달나라에 가겠다는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우주 비행사들은 1969년에 달나라에 갔다가 오는 데 성공했다. 이 영향으로 나는 조선항공과의 항공 전공을 가정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 본인은 만화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 6년간 경북중-경북고에 걸어서 통학했던 친구들이 동네에 있었다. 나는 이들과 방과 후 귀갓길에 만화방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나는 '어사 박문수'와 '라이파이'라는 만화를 재미있게 봤다. 특히 '라이파이'에는 우주선, 레이저 건, 휴대전화 등이 등장했다. 그때 나는 우주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는 내가 판검사가 되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결국 항공우주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 대학 졸업 후 ADD에서 일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 나는 건강 문제 등으로 대학 시절에 휴학한 적이 있다. 그때 전자정보처리시스템(EDPS)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배웠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이 유행이지만 당시는 EDPS라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도입되던 시기였다. 복학 후 우리 과의 이혜경 교수님이 나한테 자신의 프로젝트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부터 박격포 개량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포탄의 탄도 계산 등을 위해 전산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인연으로 나는 졸업할 때 KIST로 스카우트됐다. 1973년에는 ADD로 옮겼다. 당시 공군사관학교 교관이면서 ADD 미사일 개발 계획 수립에 참여했던 홍재학 박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 ADD는 미사일을 만드는 '백곰 사업'을 추진했는데, 어떻게 시작한 것인가.

▲ 1971년 12월 24일 박정희 대통령이 지대지 미사일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이 ADD의 구상회 박사와 공군의 김중보 장군에게 박 대통령의 친필 메모를 전달했다. 그 메모는 "1단계로 1975년까지 200㎞ 사거리의 국산 지대지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돼 있었다.

--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나.

▲ 처음부터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당시 지대지 미사일 기술을 가진 나라는 6개국 밖에 없었을 정도로 난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이 지시는 1972년 2월 새로 부임한 심문택 소장에게 보고됐다. 그해 4월 국방부는 ADD에 공식적으로 개발 지시를 내렸다. 당시 KIST에는 유체기계 실장으로서 프랑스의 SS-11 대전차 미사일의 모방 개발을 연구 중이던 이경서 박사가 있었다. 심 소장은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었고, 이 박사는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 본격적인 계획수립에 돌입했나.

▲ KIST의 이경서, 육사의 김정덕, 해사의 최호현, 공사의 홍재학, ADD의 구상회 등이 모여서 지대지 미사일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1972년 5월부터 9월까지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한 아파트에 안가를 차려놓고 거기서 작업을 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보안을 위해 '항공공업육성계획'이라고 했다. 이들은 5개월간 안가에 갇혀 지냈다. 가족들에게는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간 것으로 말해놨다고 한다.

-- 백곰 사업 계획에 대한 최종 승인은 언제 이뤄졌나.

▲ 이들의 계획안이 1차로 청와대에 보고된 것은 1972년 9월 15일이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승인이 난 것은 1974년 5월이었다. 세부 계획을 보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미사일을 완성하는 목표 시기도 1975년에서 1978년으로 미뤄졌다.

-- 대통령의 사업 승인 4년 만에 백곰 사업은 성공한 것인가.

▲ 그렇다. 1974년 말부터 1975년까지는 여러 가지 장비 도입과 기술 훈련이 진행됐다. 인력 확보도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연구개발은 1976년부터 착수할 수 있었다. 1978년 4월부터 비행시험을 했는데,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했다. 그러다 드디어 1978년 9월 26일 최종적인 공개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 본인은 언제부터 백곰 사업에 참여했나.

▲ 나는 1973년 1월 ADD 위촉 연구원 자격으로 미사일 개발 세부 계획 수립부터 참여했다. 3월에는 KIST를 떠나 ADD에 공식 입사해서 미사일의 몸체인 기체 분야를 담당했다. 그해 나는 미사일 개발의 중간단계로 설정했던 무유도로켓(XFR-1, 홍능1호)을 디자인했다. 그 무유도 로켓은 1974년 12월 대천 앞바다에서 성공적으로 비행했다. 당시 홍재학 박사가 책임자가 돼서 개발과 비행시험을 추진했다.

-- 백곰 사업의 성공을 시작으로 한국의 미사일은 많이 발전했는데, 지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 현재 미사일 강국으로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이 있다. 한국은 미사일 종합순위로는 5∼6위 정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종합순위를 매기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사일 종류가 다양하고 나라마다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방공 미사일, 독일과 프랑스는 공대공과 공대지 미사일, 인도는 초음속 대함 미사일이 강하다.

-- 한국은 어떤 분야에서 강한가.

▲ 최근의 미국-이란전쟁에서 확인됐듯이 지상목표 공격을 위해 지대지, 공대지, 함대지 미사일, 장거리 드론 등이 사용된다. 또 대함 미사일, 방어용 대공 미사일 등 다양한 미사일이 전장 환경에 맞게 투입된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감시정찰 체계와 통신 시스템을 사용하여 단거리 대전차 미사일에서부터 장거리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까지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했다.

--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천궁이 유명해졌는데.

▲ UAE가 보여준 천궁-Ⅱ의 방어율 94∼96%는 정말로 뛰어난 수준이다. 100% 방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공 방어 미사일 시스템이 가능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한국 정도다. 그런데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중국산 대공 무기와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보다 한국의 천궁-Ⅱ가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대공 미사일은 톱 클래스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다양한 미사일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어떻게 미사일로 요격하나.

▲ 요격할 때 표적과 미사일의 상대속도는 마하 10∼20 정도다. 즉 음속의 10배 이상이다. 마하 5∼10의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마하 5∼10의 속도로 날아가서 요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극초음속으로 날아오는 바늘을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바늘로 맞추는 격이다.

-- 어떻게 이런 요격이 가능한가.

▲ 첨단 레이더 시스템과 센서 기술로 정밀한 유도조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먼저 아군은 날아오는 적군의 미사일을 레이더로 포착한다. 그리고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이를 레이더로 추적한다. 요격 미사일 자체에도 레이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아군의 컴퓨터는 이런 레이더 정보를 토대로 빠르게 계산하면서 유도 조종을 통해 적군 미사일의 입체적 상대위치를 제로로 만든다. 상대위치 제로는 아군 요격 미사일을 기준으로 적군 미사일이 같은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요격이 성공한 것이다.

-- 미사일과 미사일이 정면으로 충돌하나.

▲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상대방 미사일의 측면에 충돌하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하면 정면 충돌보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직접 충돌해서 적군 미사일을 제거하는 이런 방식을 히트 투 킬(Hit-to-Kill, HTK)이라고 한다. 이런 직격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이게 불가능하면 적군 미사일 주변에 파편을 터트리는 방식도 있다. 파편은 미사일보다는 비행기를 요격할 때 더 많이 사용된다.

-- 앞으로 자주국방 수준을 더욱 끌어올리고, 방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산 무기가 더 발달해야 하는데,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 연구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용인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과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줘야 한다. 적절한 보상과 함께 실패해도 두렵지 않은 그런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인재들이 모인다.

-- 현재는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것인가.

▲ 관료주의가 문제다. 국회가 수많은 법을 만들고,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만드는데, 이게 너무 많다. 이러니 실패하면 이런 규정을 근거로 감사원, 방위사업청 감독관실, 군 수사기관, 검찰, 경찰 등의 수사와 감사가 뒤따른다.

-- 관련 사례가 있었나.

▲ 2017년에는 이런 보도가 있었다. 무인기 개발 시험 실패와 관련해 문제가 된 부분을 담당했던 연구원들에게 1인당 13억원씩 벌금을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징계도 하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몇 년에 걸쳐 ADD가 해명하고 설득해서 연구원들이 벌금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사에 따른 고통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컸을 것이다. 이러니 누가 적극적으로 도전적인 연구개발에 나서겠는가?

-- 어떻게 해야 하나.

▲ 연구개발을 억누르는 각종 제도는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최근 한화 공장 사고에서 확인됐듯이 무기 개발자들은 항상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소 실수했다고 해서 엄하게 처벌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무기체계 연구개발 중의 실패는 성공을 위해 올라가야 할 필수적 계단이다. 세계적 방산 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방 분야 연구원들에 대한 사기진작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Bundan Sonra Ne Olabilir?

Yapay zekâ öngörüsü — kesinlik taşımaz

  • 국방 분야 연구원들에 대한 사기진작 정책이 시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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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çık Sorular

  • 관료주의 문화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 연구개발 실패에 대한 처벌 완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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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 haber ilk olarak şurada yayınlandı: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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