نظرة سريعة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자 1960년 북송선 타고 북한 갔던 재일조선인 2세 박영숙(朴永淑)씨(85)가 3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일본 아시아프레스가 7일 전했다.
ملخص مُنشأ بالذكاء الاصطناعي
لماذا يهم
박영숙씨는 1940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1960년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자 1960년 북송선 타고 북한 갔던 재일조선인 2세 박영숙씨(85)가 3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일본 아시아프레스가 7일 전했다. 박씨의 딸 임윤미씨도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어머니는 3일 오후 강서구 자택에서 운명했다"고 확인했다. 향년 만 85세. 아시아프레스 보도 내용과 임씨의 말을 종합하면 고인은 1940년 일본 히로시마시에서 대구 출신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10남매 중 여덟째였다. 5살 때인 1945년 피난처에서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목격했다. 고인은 피폭되지 않았지만, 히로시마에 있던 자택이 소실됐고, 임신 중이던 시누이가 폭사했다. 북한으로 건너간 고인의 넷째 오빠도 피폭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1960년 부모와 7명의 형제자매가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 고인은 사회주의 체제의 억압을 우려해 일본에 남았다. 1962년 12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임종할 생각에 북한 청진으로 갔다. 아버지는 숨진 뒤였고, 마중 나온 오빠는 "편지에 오지 말라고 썼는데 왜 온 거냐?"라고 책망했다. 부모가 살던 신의주에 배치된 뒤 가나가와현 출신의 재일조선인 남성과 결혼해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1970년대 고인의 둘째 오빠가 간첩으로 몰려 국가안전보위부에 연행되어 숨졌고, 이에 불만을 표시한 셋째 오빠마저 연행되어 요덕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980년대에는 장남이, 1990년대에는 차남마저 연행 후 사망했다. 오빠와 아들의 시신은 가족에게 인도되지도 않았다. 1997년 딸 부부, 손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가 한국에 입국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아시아프레스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대표와 고인의 인터뷰 등을 담은 책 '증언 북한 귀국자-조국으로 건너간 '자이니치'는 어떻게 살았는가'가 출간됐다. 이시마루씨는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고인이 북한에 있을 때인 1993년 히로시마 피폭자인 넷째 오빠의 일본 중학교 동창생들이 조금씩 모은 돈 약 200만엔을 치료비로 송금했다고 한다. 그중엔 자신도 피폭당해 정부의 지원을 받는 처지인 사람도 포함돼있었는데도..."라고 말했다.
أسئلة مفتوحة
- 박영숙씨의 남편과 아들们의 정확한 사망 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