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Look
교육부 장관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지낸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이 1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8세. 고인은 기초생물학 개척자이자 과학기술 발전과 교육 혁신에 기여했으며,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염원했다.
AI-generated summary
Why It Matters
조완규 전 총장은 기초생물학 개척자로, 서울대 총장, 교육부 장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과학기술 발전과 교육 혁신에 기여했다. 그는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평생 염원했다.
교육부 장관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지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인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염원한 '한국 생물학의 대부' 조완규(趙完圭) 전 서울대 총장이 13일 오전 3시 30분께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8세.
고(故) 조완규 전 원장은 우리나라 기초생물학 분야를 개척한 생물학자이며 제18대 서울대 총장(1987∼1991), 제32대 교육부 장관(1992∼1993),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1994∼1998) 등을 지내며 과학기술계의 발전과 교육 혁신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1928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전중,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포유동물의 난자 성숙 과정을 조절하는 핵심 기전을 규명해 세계 발생생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 난자와 배아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새로운 배양법을 개발하는 등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2021년 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직후 제대로 된 실험 장비조차 부족했던 시절에 연필과 종이로 할 수 있는 인류유전학, 특히 한국의 남녀 출생성비 연구에 집중한 결과 여아 출생 100에 남아 출생이 110이라는 결과를 얻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회고했다. 실험 기자재를 갖추게 됨에 따라 생체의 인공배양법을 개발해 생쥐 난소기능 그리고 미성숙 난자의 성숙 과정을 관찰하는 등 발생생물학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1957∼1992년 서울대 문리대와 자연대 강단에 섰다. 고인이 36년간 강단을 지키며 배출한 50여 명의 제자들은 그의 호를 딴 '설랑(雪浪) 문하생'으로 불리며 국내외 학계에서 발생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 도약기의 산증인이자 탁월한 교육·과학 행정가로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헌신했다.
1980년대 초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을 주도해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비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고, 1991년에는 학계와 기업을 연결하는 한국바이오산업협회를 창립해 지식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과학기술계 단체의 체질을 혁신했으며 국제백신연구소(IVI)의 한국 유치를 성공시키고 한국후원회 이사장을 맡아 세계적인 백신 개발 연구를 전폭 지원했다.
고인은 1994년에는 한림원 창립과 함께 초대 원장으로 선임돼 다양한 학술 활동과 선진국 한림원과 협력을 이끌었고,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우리 과학기술계의 국제적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1987년 6월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한 뒤 학칙에서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총장의 학생 징계권을 교수회의에 넘기고, 징계 학생 1천여 명의 복학을 허용하는 등 대학 자율화를 정착시켰다. 2021년 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 당시 "정부는 서울대가 승인 요청한 소위 '자율학칙'을 3개월이 지나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학칙을 승인하지 않으면 총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문교부에 통고했습니다. 결국 서명원 문교부 장관은 새로운 학칙의 승인을 다음 장관에게 맡길 수 없다며 소위 서울대가 요청한 자율학칙을 승인하고 장관직을 물러났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학장·총장 직선제를 수용하며 갈등을 조율했고,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4년 임기를 모두 마친 마지막 관선 총장으로 기록됐다. 1992년에는 제32대 교육부 장관을 맡아 대학 자율화를 추진했다. 당시 인천대를 인천시립대로 개편했다.
고인은 90대 나이에도 하루 1만보를 걸을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했다.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을 염원했다. 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에서 "젊은 과학자의 창의성, 능력, 의지 그리고 추진력을 보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가능하다"며 "이들이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만 있다면 30년 혹은 40년 후 분명 노벨과학상 수상 후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전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홍성현씨와 2남1녀(조진원<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명예교수>·조인숙·조진완<한국금융산업연구원장>), 사위 윤병우(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씨, 며느리 송영미·이양숙씨 등이 있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남긴 업적을 기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葬)'으로 엄수된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16일 오전 7시, 장지 시안추모공원. ☎ 02-2072-20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