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Look
1979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고 김남주 시인이 46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했다. 남민전 준비위원회 가입 혐의로 구속된 김 시인은 감옥에서도 시를 써냈으며, 1994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AI-generated summary
Why It Matters
남민전은 1976년 민족일보 기자였던 이재문 씨 등이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목표로 결성한 지하 조직으로, 서울 시내에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80여명이 검거된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 징역 15년 선고 후 46년만 무죄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해 옥살이한 고(故) 김남주 시인의 재심 무죄 판결에 검찰이 항소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한대균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재심에서 검찰은 김 시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구형했으나, 강도·강도예비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주장하며 다퉜다.
지난 2일 재판부는 김 시인에 대한 불법 구금, 폭행·협박 등 가혹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남민전은 1976년 민족일보 기자였던 이재문 씨 등이 반유신 민주화운동 등을 목표로 결성한 지하 조직이다.
서울 시내에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 이유로 80여명이 검거됐다. 이는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됐다.
김 시인은 1978년 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하는 등 유신 반대 운동에 앞장선 혐의로 1979년 구속됐다가 이듬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김 시인은 투옥된 지 9년 2개월여 만인 1988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으나, 그로부터 5년여 만인 199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시인은 감옥에서도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우유갑과 은박지 등을 눌러가며 시를 썼다.
그렇게 감옥에서 쓴 250여편의 시는 1984년 발간된 첫 시집 '진혼가'에 이어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 등을 통해 발표됐다.
What to Watch
AI outlook — possibilities, not facts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가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결을 유지할 것이다.
Likely · Within months
Open Questions
- 검찰이 항소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