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핵심 5인' 유일 생존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별세
내무·국방장관, 민정당 의원 등 지내…5·18 진압 관여 혐의로 징역형 선고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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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핵심 5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관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94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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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전 장관은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1997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수원=연합뉴스) 김효정 김지원 기자 =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은 이날 94세로 사망했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식장 측이 정 전 장관의 사망 관련 공식 확인을 거부했고, 연합뉴스가 직접 빈소를 확인했다.
1932년 출생한 정 전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며 전두환·노태우,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더불어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혔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반란 이튿날인 육군 특전사령관에 임명됐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에 대한 무력 진압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그는 계엄령 발동 상황에서 공식 지휘계통이 아니었지만 5·18 민주화운동 기간 최소 네 차례 광주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도 후일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그는 5공화국에서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내고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뒤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1988년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대구 서구갑)에 당선됐으나, 이듬해 12월 5공 청산 여론 속에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다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육사발전기금 이사장, 특전사 전우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정 전 장관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5시간 만에 위촉을 취소하기도 했다.
신군부 핵심 5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생존자였던 정 전 장관 사망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은 더욱 어렵게 됐다는 평가다.
그는 지난 2021년 5·18과 자신이 무관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출하는 등 책임을 부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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