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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칼럼니스트 정갑식은 버지니아 울프의 '잘 먹지 못했다면 생각도,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현대인이 바쁜 사회 속에서 점심을 포함한 식사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는 점심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끼 때운다'는 표현이 현대인의 무관심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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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t Matters
푸드 칼럼니스트 정갑식은 버지니아 울프의 '잘 먹지 못했다면 생각도,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현대 사회에서 식사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그는 특히 점심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끼 때운다'는 표현이 현대인의 무관심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문학을 좋아했던 내가 영국에 유학 온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정말 오래된 일이지만 한 계간지에 영국 문학관 꼭지를 몇 해에 걸쳐 담당했던 것은 더 감사한 일이다.
영문학 대가들의 흔적을 찾아 그가 살았던 집, 공부했던 학교, 산책했던 마을, 지인들과 문학·철학·종교 등을 논했던 술집 등을 돌아다닌 일은 정말 황금 같은 추억이다. 무엇보다 당시의 역사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그 작가들을 만나는 일에 가슴이 충만했다.
그때 만난 수많은 영문학 작가 중 한 명이 버지니아 울프다. 그녀가 내게 특별한 이유는 문학적 과업, 페미니즘에 대한 거룩한 진보, 한 여인이 남긴 숭고한 삶의 가치 등 여러 가지다. 그런데 실토하자면 나만의 특별한 의미가 따로 또 있다. 그녀가 남긴 음식에 관한 짧고 명료한 문장이다.
음식을 먹고 삶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에게 '잘 먹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너무도 명확히 표현했다. '잘 먹지 못했다면 생각도,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구절이다.
거창하고 화려한 언어적 수사를 동원해 음식에 대해 예찬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문학 작품에서 이토록 짧고 강렬하게 설명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문구로 정말 백미다. 이성적인 사고, 따뜻한 가슴, 충분한 숙면, 이 3가지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인은 그녀가 말한 것처럼 생각을 잘하고, 사랑을 잘하기 위해, 숙면을 잘하기 위해 잘 먹고 있을까?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는 나는 더 관심을 갖고 모든 환경에서 이 점을 유심히 살펴본다.
조심스럽긴 하나 내가 내린 결론은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더 바쁘고 복잡한 사회구조로 내몰린 삶이 첫 번째 이유이고, 재정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이 제한적이란 게 두 번째 이유이고, 다른 일들 때문에 먹는 것을 본의 아니게 놓치거나 심지어 등한시할 때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세 번째 이유다.
실제로 '한 끼 때운다'는 말까지 횡행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먹는 일의 중요함이나 필요성에 대해 현대인이 내뱉는 가장 무관심한 방조가 바로 이 표현이다. 하지만 대충 때우는 한 끼는 우리 몸을 서서히 죽이는 일과 같다.
한 끼 때운다는 말이 특히 거침없이 적용되는 때가 점심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을 아껴 일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저녁을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바쁜 현대인들은 아침은 허둥지둥 먹거나 건너뛰고, 점심은 대충 한 끼 때우고, 저녁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거창하게 먹는 식사 문화가 다반사가 된 듯하다.
하지만 노동 강도를 따져볼 때도 하루 중 에너지 소비가 정점에 이르는 것은 점심이다. 하루 세끼 중 점심이 중심추와 같다. 당연히 대충 먹고 때우면 안 된다.
점심, 즉 런치(lunch)가 이렇게 대접받지 못하는 지경에 놓이게 된 이유를 서양의 음식문화에서 몇 개 찾을 수 있다. 가장 큰 원흉(?)은 저녁 식사, 디너(dinner)라고 생각한다. 하루 세끼 중 가장 성대하게 차려진 디너 말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푸짐한 디너를 먹을 수 있으니 점심 한 끼쯤은 대충 먹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디너에는 사람들과의 풍성한 교제까지 곁들여지니 점심은 말 그대로 '점 하나 찍으면 되는 일'로 여겼다.
또 다른 이유는 산업화다. 산업혁명이 인류의 문명에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식사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사회가 생산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대충 빨리 먹고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의 삶이 런치에 녹아든 것이다.
중세 시대부터 사용된 격식 있는 점심이란 뜻의 런천(luncheon)이 런치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즉 런천이 삶을 표현하는 생활문화에서 '음식'을 보는 구조라면, 런치는 단순히 '수단'으로써의 음식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싶다.
음식의 역사에서 런치가 어쩐지 아련한 단어로 내게 다가오는 이유다. 점심을 빠르게 먹어 치우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은 해결 과제가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됐을 지경이다.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을 먹는다, 이른바 '삼시세끼'다. 삼시세끼만 잘 먹어도 우리 몸을 성공적으로 지키는 셈이다. 그런데 삼시세끼,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런치를 제대로 먹기가 어렵다.
이 대목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점심은 한자 뜻 그대로 '점 하나 찍는 일'이 아니고, 영어권에서 말하듯 '쉬어가는 틈에 가볍게 먹는 한 끼 식사'도 아니라는 것을.
푸드 칼럼니스트 정갑식
Open Questions
- 현대인은 왜 점심을 등한시하는가?
- 점심 식사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시켜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