نظرة سريعة
20년 가까이 잠실구장을 공유한 라이벌 LG 박용택과 두산 김재호가 KBO 퓨처스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서 잠실구장과의 마지막을 기념했다. 두 선수는 마운드에 올라 이별을 실감했으며, 각자의 야구 인생과 친정팀의 미래, 새 야구장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ملخص مُنشأ بالذكاء الاصطناعي
لماذا يهم
20년 가까이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한 라이벌 LG 트윈스의 박용택과 두산 베어스의 김재호가 KBO 퓨처스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서 잠실구장과의 이별을 기념했다. 올해를 끝으로 철거되는 잠실구장을 추억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한 명은 3루 쪽 라커룸에서, 또 한 명은 1루 쪽 라커룸에서 20년 가까이 그라운드를 공유했다.
유니폼 색은 달랐다.
한 명은 검은 줄무늬, 다른 한 명은 남색을 입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밟은 흙, 두 사람이 올려다본 조명탑, 두 사람이 마주한 관중석은 모두 같은 잠실이었다.
박용택(47·전 LG 트윈스)과 김재호(41·전 두산 베어스)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퓨처스 올스타전 시구자로 마운드에 섰다.
올해를 끝으로 철거에 들어가는 잠실구장을 추억하기 위해 올해 올스타전은 지난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잠실을 홈으로 쓴 라이벌 구단에서 각자 한 팀의 유니폼만 입고 선수 생활을 마친 원클럽맨은 사이좋게 마운드에 올랐다.
잠실구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다가오는 지금, 이 구장을 '집'이라 부른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시구를 위해 마운드에 올랐던 순간, 두 사람은 비로소 이별을 실감했다고 했다.
박용택은 "저와 재호를 섭외한 것은 잠실야구장 마지막이니까 그런 것 같다. 마운드 올라가기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실제로 마운드에 올라가니까 진짜 이 야구장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시즌이 끝날 때가 되면 더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호는 "저도 잠실에서 오랜 시간 뛰었다. 연차 수로 따지면 21년으로 용택이 형보다 오히려 오래 뛰었다"며 "아직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시즌 마지막에 여기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가슴에 와닿을 것 같다. 동대문야구장이 없어진다는 말이 많았을 때도 '에이' 그러다가 결국 없어지니까 허전함을 느꼈다. 잠실야구장 역시 허물어지면 그때 마음이 쓰이지 않을까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용택의 이야기는 2002년에서 시작한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그해 LG 유니폼을 은 그는 2020년 은퇴할 때까지 19시즌을 오직 한 팀에서만 뛰었다.
그사이 그의 방망이가 만들어낸 안타는 2천504개.
지금은 후배들이 하나둘 앞질렀으나 은퇴 당시에는 KBO리그 역대 최다안타 기록이었다.
그의 은퇴식은 코로나19가 조금이나마 수그러든 2022년 잠실에서 열렸고, 등번호 33번은 LG 구단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김재호는 2004년 두산에 입단해 2025년 유니폼을 벗기까지 21시즌을 한 팀에서 보냈다.
데뷔 초반은 벤치와 2군을 오가는 무명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며 두산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고, 이후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뚝 선 두산 왕조의 내야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골든글러브 2회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3회로 늦게 피었지만, 오래 빛난 야구 인생이었다.
같은 구장에서 뛰었지만, 두 사람이 상징하는 바는 극명하게 갈렸다.
박용택은 '기록의 사나이'였다. 외야 한 자리를 지키며 매년 3할 안팎의 타율을 찍었고, 꾸준함으로 안타를 쌓아 올렸다.
LG가 오랜 기간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멀어져 있던 시기, 그의 방망이는 팬들이 잠실을 찾는 이유였다.
김재호는 '우승의 사나이'였다. 두산 왕조 시절, 그의 글러브는 내야를 조용히 지배했다.
화려한 홈런이나 타격 기록보다, 결정적인 순간 잡아내는 타구 하나, 병살을 완성하는 송구 하나가 그의 언어였다.
두 사람은 잠실을 상징하는 인물로 시구자에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박용택은 "사실 처음에는 '왜 퓨처스 올스타지'라고 생각했다. 들어보니 본경기(1군 올스타전)는 어린이들이 시구한다고 하더라"고 농담을 건넨 뒤 "사실은 진짜 영광"이라며 웃었다.
김재호는 "용택이 형은 당연히 1군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분이다. 저는 여기(퓨처스 올스타전) 시구가 수준에 맞다"며 "아직은 은퇴한 선배님들에 비하면 제 나이가 어린 편이다. 그래서 이 자리가 무척 뜻깊고, 내가 와도 되나 싶을 정도"라고 몸을 낮췄다.
잠실 라이벌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특수한 라이벌전이다.
홈구장을 공유하는 두 팀이 유니폼과 더그아웃만 바꿔 맞붙는 경기다.
박용택과 김재호는 이 시리즈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두 사람에게 현역 시절 서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물었다.
박용택은 "재호한테 개인적인 감정이 크게 있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제가 뛰었던 시기는 두산에 많이 열세였다. 15연패를 했던 시즌(2018년)도 있다. 두산이랑 할 때는 팬들은 물론 프런트나 모기업의 관심도도 높았다. 이겨야 하는 경기를 졌던 아픈 기억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김재호는 "모기업 간의 라이벌 구도와 경쟁 심리가 있었다"면서 한 장면을 떠올렸다.
"용택이 형 하면 (정)재훈이 형 팔 다쳤을 때가 생각난다. LG와 경기하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상황이 많았다. 그 중심에는 항상 용택이 형이 있었다. 당시에는 '용택이 형만 막으면 된다',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김재호가 언급한 장면은 2016년 8월 3일 잠실 경기다.
박용택의 강습 타구가 두산 정재훈의 오른 팔뚝을 강타해 골절상을 입혔고, 정재훈은 결국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은퇴했다.
휘문중·휘문고 후배였던 박용택은 정재훈의 은퇴식에 따로 연락을 넣는 등 오랜 시간 미안함을 표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현재 친정팀 성적으로 향했다.
박용택은 "LG는 당연히 우승해야죠"라며 힘줘 말했다.
그는 "우승해서 2020년대는 LG가 왕조를 했다고 기억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마이크 앞에서 언제나 균형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이날만큼은 '미스터 LG'다웠다.
김재호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두산은 김원형 감독님 첫해이고, 천천히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잘 만들어가고 있다"며 "당장 우승을 바라기보다는, 일단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잠실구장은 곧 사라진다.
새 돔구장이 들어서고, 두 팀은 새로운 홈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두 사람에게 새 잠실구장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박용택은 라커룸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모든 야구장을 통틀어 잠실 라커룸이 가장 열악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원정팀은 복도에서 옷을 갈아입었다"며 "그런 시설들이 잘 갖춰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재호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돔구장을 원했다.
그는 새롭게 들어설 '잠실 돔'에 대해 "우리나라에 돔구장이 흔하지 않다. 이제는 늘어나야 하는 시기"라며 "우리가 외국으로 돔구장 견학을 가는 게 아니라, 이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견학을 오는, 그런 돔구장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정착하고 선수들의 이적이 활발해진 지금, '한 팀에 뼈를 묻는' 프랜차이즈 스타는 희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박용택과 김재호는 잠실이라는 시대가 남긴 마지막 세대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잠실의 마지막 조명이 꺼지는 날, 두 사람의 이름은 라이벌이 아닌 '잠실의 아이들'로 함께 기억될 것이다.
أسئلة مفتوحة
- 새 잠실 돔구장의 정확한 완공 시점은 언제인가?
- 박용택과 김재호의 향후 야구계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