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청은 단순히 노화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 감소와 인지 부하 증가로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며, 보청기 사용으로 청력이 개선될 경우 치매 발생 위험이 최대 14% 낮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됨. 특히 70세 미만에서 효과가 두드러지고, 조기 사용이 청각박탈 예방과 인지 기능 유지에 중요함.
AI-generated summary
난청은 노화와 함께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단순히 듣기 어려움을 넘어 사회적 활동 감소, 인지 기능 저하, 우울 및 고립과 연결되어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음. 특히 보청기 사용률이 낮은 국내 현실에서 조기 진단과 개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나이가 들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많다. 보청기를 권유받고도 불편하거나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사용을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난청은 단순히 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어려워지면서 사회적 활동이 줄고 뇌로 들어오는 청각 자극도 감소해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난청은 치매 위험 요인 중에서도 치료와 재활을 통해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대표적인 '교정 가능한 위험인자'로 꼽힌다.
최근에는 난청을 방치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에 보청기를 사용해 청력을 개선하는 것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 보청기 사용했더니 치매 위험 9%↓…청력 개선되면 14%↓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발표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국제공동연구팀이 한국을 포함한 33개국 55세 이상 난청 환자 6만1천89명을 평균 6.5년 추적 관찰한 결과, 보청기 사용자는 비사용자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9%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에는 한국고령화연구패널(KLoSA)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중국, 유럽 등의 7개 대규모 코호트가 활용됐다. 추적 기간 전체 참여자의 14.6%인 8천911명에게서 치매로 추정되는 인지기능 저하가 발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보청기를 단순히 착용했느냐보다 실제로 청력이 얼마나 개선됐느냐가 중요했다는 점이다.
보청기를 사용한 뒤 청력이 효과적으로 개선된 사람은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14% 낮았다. 반면 보청기를 사용했어도 청력 개선 효과가 좋지 않았던 사람에게서는 유의한 위험 감소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연관성이 70세 이상보다 70세 미만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미국의사협회 저널 신경학'(JAMA Neurology)에 발표된 미국 프레이밍햄 연구에서는 성인 2천953명을 최대 20년 추적한 결과, 청력검사 당시 70세 미만이었던 난청 환자의 경우 보청기 사용자가 비사용자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61% 낮게 나타났다. 반면 70세 이상에서는 유의한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 잘 안 들리면 뇌에도 부담…고립·우울로 이어지는 '악순환'
난청이 치매 위험을 높이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송재진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최근 대한이과학회가 제60회 귀의 날을 맞아 개최한 '대국민 귀 건강 포럼'에서 난청과 치매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주요 경로로 '인지 부하', 청각 자극 감소에 따른 뇌 구조 변화, 사회적 고립 등을 제시했다.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뇌가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면서 다른 인지기능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청각 자극 자체가 줄어들면서 뇌 위축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난청으로 대화가 어려워지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고, 사회적 고립과 우울이 다시 인지기능 저하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송 교수는 국민건강보험 노인코호트 약 51만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난청 환자의 치매 위험이 25% 높았으며, 국내 난청 환자 1만9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난청이 심할수록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또 난청 환자 8천780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보청기 사용자의 치매 발생 위험이 비사용자보다 25%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난청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해외 임상시험 결과도 있다.
송 교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인 'ACHIEVE' 연구에서 치매 고위험군은 보청기 등 청각 중재를 받은 경우 3년 동안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대조군보다 48% 느렸다.
송 교수는 "귀를 지키는 것이 뇌를 지키는 것"이라며 "귀가 잘 안 들리면 치매 위험이 분명히 커지지만, 난청이 치매를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치매 위험을 낮추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귀 안 들려도 보청기까지 평균 9년…"중증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문제는 난청을 느끼고도 보청기 사용을 미루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같은 포럼에서 국내 보청기 사용률이 12.6%로, 선진국의 4분의 1수준에 그치는 데다 난청이 시작된 이후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 평균 약 9년의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청력 저하를 인지하고도 어려움을 참고 지내거나 전문가를 찾아가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보청기를 권고받은 이후에도 실제 착용까지 다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청기는 난청이 중증으로 진행된 뒤 사용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난청이 확인되고 의사소통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보청기 사용을 검토해야 하며 중증 난청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난청을 오래 방치하면 청각 자극 부족으로 뇌의 소리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청각박탈'이 생겨 나중에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적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 난청은 인지기능 저하뿐 아니라 낙상, 우울·외로움, 사회적 고립 등과도 연관돼 조기 개입의 이점이 크다는 게 문 교수의 설명이다.
문 교수는 보청기 사용의 핵심 원칙으로 '조기에, 적극적으로, 양측으로'를 제시했다. 난청이 생겼다면 무작정 버티기보다 청력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고 필요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청각 재활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문 교수는 "보청기 착용 적기를 놓치면 '소리는 키워도 말은 덜 알아듣는' 상태가 굳어질 수 있다"면서 "보청기는 노인의 상징이 아니라 귀에 착용하는 안경으로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AI outlook — possibilities, not facts
보청기 사용률이 향후 5년 내 20% 이상으로 증가할 경우 노인 치매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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