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애란이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의 제목 선호 배경을 밝히며, 홀수 글자 수의 리듬감과 함께 아버지의 치매 투병 경험을 통해 인간다움과 AI의 차이를 성찰했다고 밝혔다. 그는 글쓰기의 고통을 AI와 나누고 싶지 않으며, 문학은 무지를 길게 고백하는 장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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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애란은 이전 작품들에서 홀수 글자 수의 제목을 선호해 왔으며, 신작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는 7년 동안 쓴 산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는 아버지의 치매 투병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글자 수가) 홀수로 된 제목은 약간 리듬감이 있어서 좋아하고요. (웃음) 제목이 제 직업을 너무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담백하고 겸손한 느낌이라 정했습니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김애란(46)은 새 산문집의 제목에 얽힌 이야기로 말문을 뗐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새 산문집의 제목은 '그랬다고 적었다'. 일곱 글자, 홀수로 떨어지는 제목이다.
과연 그간 그가 펴낸 책들을 돌이켜 보면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 '안녕이라 그랬어' 등 홀수의 운율이 살아있는, 입에 착 달라붙는 제목이 많았다.
물론 단순히 홀수라서 택한 제목만은 아니다.
김애란은 "기획 산문집이 아니라 여러 성격의 글들이 실렸는데, 제목이 이를 하나로 묶어줄 넓은 괄호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책은 예외적으로 제목의 글자 수가 짝수였던 '잊기 좋은 여름' 이후 두 번째 산문집으로, 7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써 내려간 산문을 한데 모았다.
신작을 가로지르는 핵심 주제는 '사람'과 '이야기', '일상'이다.
특히 1부 '사람의 얼굴'에는 루이소체와 알츠하이머 치매로 투병 중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달려라 아비', '사랑의 인사', '스카이 콩콩' 등 김애란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뤘다. 대개 전형적 가부장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거나, 어설프고, 철부지 같고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도 없는 인물들이었다.
김애란은 "초기작에 부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썼다. 제가 나이가 어리고 그걸 직면하는 게 어렵다 보니 소설이라는 허구에 기대어 여러 버전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며 "이젠 나이를 먹으면서 시선이 달라지고, 산문으로도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이발소를 운영했으며, 내성적이고 좀처럼 말씀이 없으셨다고 한다. 작가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주로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는 뒤늦게 아버지를 좀 더 깊이 알아가기로 한다.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아버지의 목소리로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누군가의 삶이 결코 "하나의 완결된 서사"(62쪽)로 닫혀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는 새롭게 알게 된 아버지의 세계를 애써 포장하지 않는다. 극적인 반전이나 교훈은 없어도 슴슴한 이야기 끝에는 무언가 울컥한 것이 올라온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인공지능(AI)과 인간다움의 의미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진다.
실제 작가는 아버지가 앓는 병에 정보를 얻기 위해 챗GPT와 대화를 나누고 때로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인간에게 있고 AI에는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AI의 답변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을 삼키는 주저나 침묵이 없기 때문. 작가는 그 주저와 침묵에서 품위와 배려를, 인간다움의 의미를 발견한다.
다만 AI를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불안과 매혹을 안고서 AI를 바라보고 있어요. 생활인으로서는 AI를 여느 도구들처럼 유용하게 쓰고 있지만 창작자로서는 아주 소극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김애란은 "글쓰기란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이고 일종의 고통인데, 그 고통을 AI와 나누고 싶지 않다. 고통을 외주로 주거나 양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고통을 거치지 않고 나오는 문장이란 "누군가 입에 떠먹여준 위로, 떠먹여준 통찰"(36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에서 기다림은 혹은 망설임은 한편으로 지성의 핵심"이라며 "숙고와 탐색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유와 단순히 결괏값으로 도출되는 문장이 같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애란은 또 "어쩌면 문학은 AI와 반대로 자신의 무지를 아주 길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백해온 장르"(36쪽)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는 "느낌표보다는 물음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며 자신의 창작론도 밝혔다.
대개 '이걸 쓰겠어'라는 느낌표의 마음으로 시작하면 주장이나 선언하는 글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계속 마음이 쓰이는데 왜 그렇지'라는 물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쓰는 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를 통해 김애란의 작품은 공감과 더불어 물음 속으로 독자를 몰고 가며, 결코 쉽게 답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삶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건너가도록 돕는다. AI 시대에도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김애란은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다.
작가에게 후속 작품 계획도 물었다.
"이제껏 농사지은 거 다 책으로 내서 곳간이 비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씨뿌리고 밭고랑 갈고 해야 해서 이래저래 굴리고 있습니다. (웃음)"
다만 그는 "꼭 취재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내다 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들도 생길 것 같고, 또 그런 이야기들을 신뢰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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