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학자 유민영 교수, 대한민국예술원 최초 연극 분과 회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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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학자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며 연극 분과 최초의 학자 회원이 되었다. 희곡 자료 수집과 극장사 연구를 통해 한국 연극사의 기초를 다진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K컬처의 뿌리를 찾는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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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t Matters
유민영 교수는 수십 년간 한국 연극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왔으며, 희곡과 극장사 분야에서 기초 자료를 마련했다. 그의 연구는 한국 연극사의 체계화에 기여했으며, 최근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사람은 역사를 타산지석, 반면교사 삼아 나아갈 길을 정하죠. 연극사를 정리한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배우, 연출, 예술경영가 등 연극을 만드는 이들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연극을 발전시키게 하기 위해서죠."
구순을 바라보는 노학자는 평생을 우리나라 연극사를 세우는 데 바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십 년 전 내가 연극을 공부하려고 보니 자료가 하나도 없더라. 후세대의 연구를 위해 내가 미개척지를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최근 선정된 연극학자 유민영(89)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이후 선출된 연극 분과 회원 중 최초의 연극학자다. 그간 연극 분과 예술원 회원은 극작, 연출, 배우, 무대미술가 등 현장 예술가들에 한정됐다.
이러한 가운데 학자 출신인 유 교수가 선정된 것은 개념조차 희미했던 연극사를 정립해 연극계 전체 발전의 기틀을 닦은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아닌 연구 업적 또한 예술계와 현장 예술가들의 활동에 크게 공헌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예술원이 아니라 학술원 회원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어서 '언제 회원 시켜 달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웃음) 과거 연극학·연극사는 국문학계에서는 학문의 갈래로 인식되지 않았고, 제 연구가 예술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어 (학술원이 아닌) 예술원에서 선정된 것 같아요."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글학자를 지망하며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유 교수는 "처음에는 연극에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시나 소설에 비해 희곡은 제대로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관련 연구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스승인 이두현 교수가 '시나 소설은 이어령, 김윤식 같은 이들이 연구하고 있으니 자네는 다른 걸 개척해 보게'라고 하셨어요. 그때 흩어져 있던 희곡 작품을 수집하며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재미를 느꼈죠."
희곡과 연극예술 분야에서 제대로 정리된 자료집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유 교수는 "방학에도 도서관과 헌책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극사를 개척했다. 복사도 힘들던 시절이라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는 주요 작품과 연극인 정보를 손으로 일일이 베껴 썼다"고 회고했다.
이 시절부터 모은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1983년 출간된 '한국현대희곡사'는 한국 희곡사의 첫 발자국과도 같은 책이다. 유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근현대 연극의 출발점을 1910년대 신파극으로 잡고 시대적 구분을 확립했다. 이 책의 부록인 작품별 연보는 그가 조각조각 모은 사료를 집대성한 것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귀중한 기록이다.
"우리 연극사는 한국 사람들의 역사와 같아요. 수탈과 핍박의 식민지 시대, 전쟁의 시기, 빈곤에서 벗어나려 애쓴 전후 시대 등 근현대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해 연극사를 정리했습니다."
그가 발굴한 연극인과 작품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주요한 업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사의 찬미'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극작가 김우진(1897∼1926)의 묻혀 있던 희곡들을 발굴한 것이다. 김우진의 유족을 수년간 끈질기게 설득해 마침내 생가에서 이 작품을 발견했던 유 교수는 "그저 황홀했던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내가 (발굴) 전에 이 양반 희곡을 보니 작품성이 대단한 게 '천재가 쓴 작품이구나' 싶은 거예요. 오래 (미발표 작품을) 찾아다니던 끝에 결국 곰팡이가 슨 원고들을 발견했을 때는 그야말로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죠."
'난파' 등 그가 발견한 김우진의 원고 4편은 지난해 국가유산으로 등록됐다.
희곡사가 그의 연극사 연구 출발점이었다면 지평을 넓힌 것은 극장사다. '한국근대극장변천사',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은 텅 비어있었다시피 했던 공연장 연구의 페이지를 처음 채우기 시작한 연구들이다.
유 교수는 "희곡과 연극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며 "서울의 일부 극장을 제외하면 오래 존속하며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공연장은 전국에 얼마 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이유와 해법을 찾고자 했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실제로 예술의전당 이사장, 정동극장 이사장 등을 지내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 애썼다. 서울과 타지역 공연장의 역량 차가 극심함을 깨닫고, 극장 관리자들을 교육하고 극장 간 교류를 실천하는 전국문예회관연합회가 출범하도록 지원했다. 1988년에는 재직하던 단국대에 한국 최초의 예술경영학과를 만들었다.
그는 "극장사 연구는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 풍부하게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극장은 단순히 연극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여 가치관과 경험을 나누고 토론하는 장소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드러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연극 역사를 추적한 결과 유 교수는 연극, 뮤지컬, 가요, 드라마, 영화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K컬처'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가 펴낸 전 3권의 '인물로 보는 한국공연예술사'는 이러한 깨달음에 기초해 그의 연구 정점을 찍은 책이다.
유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등 K컬처의 원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판소리를 종합예술로 정립한 신재효부터 시작해 대히트곡 '황성옛터'를 지은 왕평 등이 나온다"고 했다.
"왕평은 최근 몇 년간 인기가 다시 급성장한 트로트 장르로 분류되는 노래의 가사를 쓴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죠. K컬처의 바탕을 만든 사람들의 삶과 예술을 추적하고 그들이 후세에 남긴 유산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상 한국 연극사라는 분야를 만들어낸 그이지만 유 교수는 "아직도 연구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워낙 처음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연극사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역사 연구는 사실과 자료만을 나열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분석하느냐가 핵심이죠."
그는 후학에게는 "내가 정리한 기초 자료들을 바탕으로 외국의 예술사적 관점이 아닌 우리나라만의 철학적 관점을 확립해 심도 있게 연극사를 조명해 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예술원 신입 회원으로서는 정부의 문화 정책을 검토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 나이에 신입 회원이라니 재미있다"고 웃음 지은 그는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이 3조원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이러한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많은 돈을 들인 극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싶다"고 말했다.
Open Questions
- 유민영 교수의 연구가 향후 교육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 예술원 내 연극 분과의 향후 활동 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 K컬처의 세계적 확산에 연극사 연구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